약을 잘 쓰는 약의(藥醫)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심의(心醫)가 먼저다

입력 2022-06-16 18:59   수정 2022-06-16 19:00



몽골의 테무진은 조상의 오랜 숙적인 금나라를 침입했다. 몽골족은 이미 황허강 이북과 만주 땅을 점령하고 금나라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갔다. 이때 많은 금나라 장정들이 전쟁에 동원되었고, 전쟁에 나선 사내들의 생사는 어찌 되었는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어느 덧 금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세워졌다.

어느 한 마을에 갓 결혼을 한 부부의 남편이 징병된 지도 5년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벌써 뛰어다니는 사내아이도 있었지만, 남편은 임신을 한 직후 전쟁터에 나간지라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어머니, 제 아버지는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부인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남편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던 터라, 어찌 답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이 앞마당의 당귀(當歸) 꽃이 3번 피고 지면 돌아오겠소”라고 했던 지아비의 목소리 또한 이제 점점 가물거렸다. 이제는 눈물도 나지 않아 이렇게 적응이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부인은 식음을 전폐하고 북쪽만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벌써 반년을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고 물이나 쌀뜨물 정도로만 연명을 한 나머지 피골이 상접했다. 어느 누구하고도 말을 하지 않아 입안에는 군내가 가득했다. 그나마 어린 아들 때문에 명을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많은 의원들이 다녀갔다. 화병을 다스리는 약도 써보고, 몸을 보하는 약도 써보고, 비위를 다스리는 약도 써 봤다. 침구치료 등 당시의 온갖 치료는 다 했다. 가진 돈이 없었기에 치료를 거부하면 자신의 의술을 펼쳐 보이고자 무료로 처방을 해 주는 의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치료도 차도가 없었고, 부인은 더욱더 몸이 말라 갔고 이제는 한시도 북쪽을 향해 누워 눈을 떼지 않았다. 모든 의원들이 불치병이라 포기를 했다.

부인을 진료했던 의원들이 소곤거렸다. “혹시 주진형이라면 가능할까 모르겠소?” “아니, 그라도 별수 있겠소? 우리가 이미 현존하는 모든 처방을 다 써보지 않았소.” “아마 화타와 편작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저 부인은 고치지 못할 것이요!”라고들 했다.

주진형(朱震亨)은 원나라의 이름난 의원이었다. 자(字)는 단계(丹溪)로 단계심법(丹溪心法)이라는 의학서적까지 쓸 정도였으니 그 명성은 자자했다. 그는 황제내경(黃帝內經) 등 당시까지 전해지는 옛 의학서는 모조리 파고들었고, 나름대로 확고한 의학관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양(陽)은 항상 남아돌고 음(陰)은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보양(補陽)하는 약을 함부로 처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와 함께 당시에 많은 의원들이 변증(辨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처방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에 대해 탄식했다. 후세까지 유명한 보약으로 알려진 처방인 경옥고(瓊玉膏)도 바로 주진형이란 의원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주 의원이 그 마을에 방문했다. 주변의 모든 의원들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주 의원은 그 부인의 집으로 향했다. 주위의 많은 의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인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시작했다.

‘촌구(寸口)맥이 거문고 현(弦)처럼 팽팽한 것을 보니 간맥(肝脈)이 치성하고 있군...’ 속으로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울고 있는 사내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서는 아이는 밖으로 데리고 나가게 했다.

주의원은 아이가 나가고 나서 문을 잠그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고얀 년!!! 네가 감히 이러고도 목숨을 유지할 셈이야? 이 아이는 네 지아비의 씨가 아니구나. 또한 뒷뜰에 묻어 놓은 항아리 속의 금은보화는 어떻게 훔친 것이냐? 필경 지아비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파내어 도망칠 셈 아니었더냐?”라고 말이다.

부인은 갑자기 허리를 일으켜 세우더니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당신이 최고의 의원이면 의원이었지, 어찌 나에게 이런 굴욕을 주신다는 말이요~!!!” 실로 반년 만에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에는 엄청난 노기가 담겨 있었다. 주 의원은 주위의 당황해하는 의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부인은 거의 서네 시간 동안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화를 냈다. 눈에는 핏발이 섰으며 목의 실핏줄이 모두 터져 나갔다.

그런데 다음 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부인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주 의원을 찾았다. “아니~ 그 이후에 어떤 약재를 처방한 것이요?”하고 물었다.

주의원은 “아무런 처방도 하지 않았소이다. 다만 나는 부인의 칠정(七情)을 다스렸을 뿐이요. 의서에 사려상비(思慮傷脾)라고 했소. 심각한 고민과 걱정이 비위를 상하게 한다는 뜻이요. 그런데 부인은 간(肝)의 기운이 치성해서 이로 인해 비위(脾胃)의 기능이 계속 억눌려 있던 것이요. 간은 노(怒)의 장부로 적당하게 화를 내면 간의 기운이 발산되어 비위를 치지 않을 것 아니요. 바로 오행의 목극토(木克土)의 방법이지요. 그래서 거짓말로 부인의 노기(怒氣)를 돋구었던 것이요.” 주변의 의원들은 감탄했다. 약물로만 해결을 해 볼까 했던 자신들이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주 의원에게 물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치료가 끝나는 것이요?” 주 의원은 “그렇지 않소. 이제 다시 소화기에 해당하는 토(土)를 살려야 하는데, 그것은 무엇이겠소?”하고 물었다. 한 의원이 “그것은 오행의 화생토(火生土)로 토(土)를 살리려면 화(火)에 해당하는 심(心) 아니겠소!”라고 답했다. “맞소이다! 심(心)이 주관하는 기쁜 마음이요.” 주 의원은 이렇게 답을 하고 나서 의원들과 함께 서찰(書札)을 하나 작성했다. 그 서찰을 들고서 그 부인을 다시 찾았다.

부인은 주 의원을 보자 다시는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주의원은 부인에게 “어제는 내가 착각을 했소. 어제 일은 미안하게 되었소. 그런데 마침 전쟁에 나갔던 남편에게 서찰이 하나 왔소. 제가 읽어 드리리다.”

주 의원은 가짜로 쓴 서찰을 읽었다. “부인, 나요. 고생이 많을 것이라 생각되오. 나는 지금 잘 살아 있소. 전쟁터에서 포로로 붙잡혔는데, 운 좋게 탈출해서 지금 몽골의 한 초원에서 양을 수백마리를 키우고 있소. 이 양들을 다 데리고 가려고 하니 시간이 걸린 것 뿐이요. 아들놈이 태어났다는 소식도 들은 바 있소. 아무쪼록 내가 다시 갈 때까지 아들도 잘 키우고 식사도 잘하고 건강하게 있어야 하고~~!”라는 내용이었다. 부인은 그때서야 웃음을 보였다. 눈물이 흐르면서도 그래도 웃는 모습이 ‘이제야 희망을 찾았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의원들은 밖으로 나와 주 의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오장육부에는 희노애락비공경(喜怒哀樂悲恐驚)이라는 칠정(七情)이 깃들여져 있소. 간장에는 분노, 심장에는 기쁨, 비장에는 고민, 폐장에는 우울, 콩팥에는 공포 등이죠. 요즘 사람들은 과도하게 기뻐하고 지나치게 성을 내고 한없이 절망하니 걱정입니다. 이들 감정은 지나치면 오장육부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그런데 당신 의원들은 환자를 진찰하면서 매번 비방만 떠 올리는 것이 안타깝구려. 항상 약의(藥醫)보다는 환자의 마음을 다스리는 심의(心醫)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오.”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부인은 아들과 건강하게 나날을 보냈다. 간혹 북쪽을 쳐다볼 날이면 수많은 양떼들을 거느리고 건강하게 돌아올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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